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삐뚤어진 주차

기사승인 2022.07.06  01:09:24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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교회 가는 날 아침이면 평일의 출근 때 보다 눈 코 뜰새 없이 더욱 바쁘기만 하다. 집에서 교회까지는 넉넉잡아 10분 거리지만 1시간 일찍, 그것도 서둘러 집을 나서야만 된다.
세 분의 할머니와 얼마 전에 재혼하신 은퇴 목사님 내외분까지 다섯 분을 모시고 교회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.

연공서열이라고 모시러 가는 순서가 나이 드신 분부터 우선이어야겠지만, 내 편의상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사시는 분부터 먼저 모시러 간다. 
첫 어르신이 서복림 할머니다. 칠십 초반이신 서 할머니는 한결 같이 미리 나와서 기다렸다가 뒷좌석 왼쪽에 자리를 잡는다. 
내 차는 운전사까지 포함해서 다섯 명이 정원이다. 때문에 한 명이 늘 상습적인 정원 초과다. 엄연한 교통법규 위반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교회 가는 날 아침이면 교회에 도착할 때까지 늘 살얼음을 딛는 기분이다.

거리를 순찰하는 경찰관한테 언제 발각될지 몰라 내 마음은 전전긍긍하지만 차 안의 어르신 승객들은 이런 내 마음엔 아랑곳 없다는 듯이 만나면 서로가 반갑고 마냥 즐겁기만 하다.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로 이야기 꽃을 피우느라 차 안은 더할 나위 없이 화기애애하다.
다섯 어르신네들을 그렇게 모시고 다니다 보니 삼 년이란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.

가는 세월 앞에선 장사가 따로 없다는 말 그대로 조마조마 했던 부음이 날아왔다. 서 할머니가 갑자기 혈압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신 지 몇 일 만에 눈을 감으셨다는 것이다. 한 자리가 비어서 자리는 편했지만 모두가 허전해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너무 큰 탓인지 좁은 자리가 그립다며 살붙이처럼 서 할머니를 그리워들 했다. 


몇 개월 후 재혼하신 목사님의 사모님이 목욕하러 사우나에 가셨다가 넘어져 대퇴골이 부러져 병원에 퍽 여러 달 동안 입원하셨다. 퇴원하셨지만 팔십이 훨씬 넘으신 목사님이 사모님을 돌보실 수 없어 결국은 산호세 자기 딸네 집으로 들어 가시고 목사님 역시 홀로 계시다 목이 추운 학처럼 괌에 있는 둘째 아들네 집으로 가셨다. 


괌에 얼마 동안 머물다가 조지아 주에 있는 큰 아들네로 와서 몇일 되지 않아 내게 전화를 거시는 거라면서 "집사님 순두부 먹고 싶어서 좀 있다가 가든 그로브로 가야겠어 그 곳이 너무 그리워~"
그도 그럴 것이 순두부를 워낙 좋아하셔서 이틀에 한번은 꼭 잡수시던 분이 순두부를 거의 일 년 넘도록 못 잡수셨으니 무척이나 잡수시고 싶었을 것 같다. 
나는 얼른 "목사님 빨리 오셔요. 순두부 매일 사드릴께요" 했더니 너무 좋아하시던 그 목소리의 여운이 내 귀에서 채 가시기도 전에 아침식사를 잘 하시고 아들 내외 앉혀놓고 심혈을 기울여 설교를 하시고는 세 시간 후에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. 
워낙 의지력이 강하시고 건강하셔서 그렇게 빨리 돌아 가시리라고는 누구도 상상을 못했다.

전화로 가슴 아픈 부음을 듣고 나는 너무 황당하였다. 
결국 시신은 남가주로 운구해 와 로즈힐에 계신 사모님 곁에 안장하였다. 나에게는 친정 아버지와 진배 없는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 주셨는데 다시는 볼 수도 목소리도 들을 수 없다는 생각들이 알맹이 없는 언어의 물고기처럼 텅 빈 가슴의 수초만을 더듬고 지나간다. 파란 잔디가 미풍에 살랑대며 속삭인다. 
"인생은 다 그런거야"

그 후 어느 교회 가는 날 아침 신 할머니, 정 할머니 두 분은 우리도 차례가 되었나 봐 하시며 넓어진 좌석이 싫다 하시며 우신다. 나도 끝내는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. 
일 년 후 정 할머니는 루선벨리로 이사를 갔지만 오 년 후 외로워 못 살겠다며 이사를 나오신 지 삼 개월만에 마루에 쓰러져 있는 것을 이웃집 할머니가 발견해 장례를 치뤘다.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더니 가장 나이 어린 정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것이다. 


이제 신 할머니 달랑 한 분만 모시고 다니기를 이 년, 어느날 병원에 다녀오셨다며 "나 대장암이래" 하시며 담담하게 전화가 걸려왔다. 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할말을 잊고 말았다. 의지력으로 일 년 이상 잘 버티셨는데 결국 신 할머니도 하나님 곁으로 가고 말았다. 
어느 날 생각도 없이 집에서 제일 가까운 서복림 할머니 집 앞에 멈춰섰다. 거기엔 할머니의 모습이 없었다. 퍼뜩 정신이 든 나는 김유신장군이 평소의 습관대로 기생집을 찾아간 애마의 목을 벤 것이 생각이 나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. 
운전하던 손을 나무랄 수도 없고 운전대를 꺾을 수도 없는 터라 창문을 통해 보이는 할머니네 부엌 안에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. 다만 마당의 활짝 핀 많은 장미만이 나를 향해 미소를 보내고 있다.


그때서야 내 차에는 아무도 탈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. 그리고 아무도 없는 차 안이 넓어졌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. 그리고 다만 어린 고양이 수염이 자라듯 나의 침묵이 자랄 뿐이었다. 이렇게 풍선의 바람이 빠지듯 모든 분들이 내 차에서 다 빠져나가고 나 홀로 다니기를 그 후로도 몇 년, 그 분들이 사시던 골목이나 집 앞을 지날 때면 덧나는 상처처럼 추억이 아른거리며 가슴에 깊이 와 박힌다.

그런데 어느 때서부터인가 주차를 하고 차문을 열고 나와서 보면 차가 꼭 삐뚤어져 있다.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내가 왜 이러지 하는 것이 여러 번 후에야 나는 삐뚤어진 주차의 의미를 알고 쓸쓸한 미소가 입가에 떠오르고 말았다. 그래 이건 세월이 말 해주는 거야 세월엔 이길 장사 없다더니 내가 바로 그 시점 어디쯤엔가 와서 있는 것이 틀림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. 


그래도 다행인 것은 운전대를 잡았던 내가 맨 나중에 빠져 나가는 바람의 존재라는 사실이다. 끈을 놓친 풍선처럼 푸른 창공을 한 없이 올라가다 바람을 다 토해내고 껍질만 땅에 떨어질 때는 풍선이 터지는 아픔은 없을 것이다. 
바람을 다 토해 내는 그 때를 위해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생각하며 마켓 주차장에 주차하고 내려서 차 뒤를 보았다. 주차장의 흰 줄과 검은 뒷바퀴가 여지 없이 평행구도가 아니고 삼각구도를 잡고 있다.

귀찮은 일이지만 차에 올라 뒤로 빼서 주차를 제대로 하고 차 뒤를 보았다. 그제야 뒷바퀴와 줄이 제대로 평행선을 이루었다. 
"인생도 이렇게 다시 파킹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? "
바람에 날아가는 주차장의 저 휴지 같은, 이 말도 되지 않는 나 혼자만의 독백은 아니겠지 그러고 보니 주차장 주변에 서있는 나무들의 길게 늘어진 그림자마다 마치 태양의 삐뚤어진 주차 같은 우울한 그늘로 지금 내 눈 속에서 출렁거린다.

지윤아 chunjiinla@gmail.com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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